글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넷-책
2015. 4. 24. 15:10
그래서 흥얼 흥얼 노래를 불러보았지
멀미에 시달리면서
그 밤 바다에서 나는 마크로스코의 빛을 보았네라고 한번 불러보고
괴롭고 힘들어서 좀 쉬었다가 다시
내가 눈을 떼면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빛을 보았네라고 불러보고
음을 바꿔보기도 하고
손으로 박자를 두들겨 보기도 하고
그대로 두 팔에 얼굴을 파묻고 엎드려 제발 멀미가 사라져 버렸으면 하고 바랬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고 앉아서 뒷부분을 불러봤지
한 사람을 기억하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라고
그러고 나니 그 부분이 마음에 들더라
그래서 그 밤을 보낼 수 있었던 거야
자는 듯 마는 듯
웃는 듯 우는 듯
한 사람을 기억하네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라고
흥얼거릴 수 있어서
우리에게는 아직도 지켜 볼 꽃잎이 많이 남아 있다
나는 그 꽃잎 하나 하나를 벌써부터 기억하고 있다는 걸
네게 말하고 싶었던 것 일뿐
김연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중, -문학동네 2014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