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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6]영란 - 공선옥

주황 2011. 6. 22. 14:29

영란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공선옥 (뿔(웅진문학에디션),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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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그 어떤 말로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정섭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자신의 행태를, 마음을 누군가한테
해명하려 드는 것처럼 힘들고 어리석고 무망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해명을 시도하려 드는 자신이 결국은 고스란히
상처가 되었다. 세상에는 명확한 것만이 선은 아니겠지만, 자기 자신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정섭은 예전에 미처 알지 못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옹색스러울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고 헤아릴 필요가 없다고까지 여겼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이 분명히,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또 다른 자신에게 가만히 말을 걸어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기를. 내가 나를 부디
저주하지는 않기를.
-104p, 1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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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 모임을 통해서 '공선옥'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나보았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의 약간의 어색함 혹은 호기심으로 '영란'과 마주했다.
작가는 나에게 조근조근 가만가만 '영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잘 모르는, 어쩌면 나 자신일지도 모르는 '영란'은 아들과 남편을 연달아 잃어버린 깊은 상실의 슬픔을 가진 여자였다.
그녀가 목포로 가기전에 그녀는 그냥 한 여자였다.
자기 자신이 두려운 그녀는 공허한 눈으로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텅빈 집에서 자기자신에게 쫒기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
살고 있는게 아니라 힘들게 살아내고 있는 그녀는 자기가 아픈것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아픈 여자였다.
그런 그녀에게 정섭이라는 남자와의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 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로 인해서 막걸리와 빵으로 연명하던 식사를 밥으로 대신하였고, 그로 인해서 '목포'라는 먼 곳 까지 가게 되었다.
그가 다시 그녀를 데리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목포'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녀는 목포에서 '영란'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웃음을 얻었고, 살아갈 이유를 얻었다.

사실 책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상실을 겪은 사람들이였다.
영란처럼 모두 자신이 원치 않은 상실을 갑자기 경험한 이들은 모두 마음이 아픈 환자들이였다.
그들은 아픈 마음을 어떻게 치유하는지 알지 못한다.
삶은 우리에게 아픔만 주었지 어덯게 치유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그들은 그렇게 그냥 살아간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삶이 사람이 준 아픔을 삶으로 인해 사람으로 인해 치유해 가고 있었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고 치유해주고 함께 눈물을 흘려주면서
그렇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살아내고 있었다.
작가는 나에게 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사람에게 치유받으라고 말해준다.
서로 좋아하고 미워하다 보면 정이 쌓인다고 했다.
그런 사람 사는 정들이 모여서 내가 혼자이지 않고, 외롭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지금까지 난 늘 내 상처를 혼자 부여잡고 끙끙대며 버텨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했다.
그런 내 상처들은 지금은 잘 덮어둔것 처럼 안보이지만, 조금만 충격을 줘도 이내 다시 벌어져서 피가 철철 흐른다.
조금씩 조금씩 천천히 자연치유가 된 상처가 아니라 급히 응급처치로 대충 밴드만 붙혀놓은 상처들은 자꾸만 벌어져서 나에게
사는건 정말 힘들고 아픈거라고 확인시켜준다.

책을 읽는 내내 목포에 가고 싶어졌다.
책에서는 목포든 어디든 지역은 상관없다고 하지만,
난 정말 목포에 가서 '음악이 흐르는 찻집'도 가고 싶고 '영란 식당'도 가서
나도 아프다고 내 상처도 봐달라고 병어찜에 막걸리 한사발 마시면서 이야기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들이 그냥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토닥토닥 한 번 내 등을 쓸어내려주면
내 마음에 있는 삶에 대한 사람에 대한 미움이 조금은 누그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