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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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이런 저지 장치가 파손되거나 기능이 멈춘 인간은 소화불량 환자에 비교될 수 있다. 이런 망각이 필요한 동물에게 망각이란 하나의 힘, 강간한 건강과 한 형식을 나타내지만, 이 동물은 이제 그 방대 능력, 즉 망각을 제거하는 기억을 길렀던 것이다.
[도덕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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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망각의 역량을 복원하기 위해선 스스로 자기 변형의 과정을 견뎌내야 하겠죠. 니체가 보았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억의 지배를 받는 노예상태에 머물러있는데, 그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정신의 자기 변형을 강조했던 이유는 이런 맥락에서 였습니다.
짐깨나 지는 정신은 이처럼 더없이 무거운 짐 모두를 마다하지 않고 짊어진다. 그러고는 마치 짐을 가득 지고 사막을 향해 서둘러 달리는 낙타처럼 그 자신의 사막을 서둘러 달려간다. 그러나 외롭기 짝이 없는 저 사막에서 두번째 변화가 일어난다. 여기에서 낙타는 사자로 변하는 것이다. 사자가 된 낙타는 이제 자유를 쟁취하여 그 자신이 사막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새로운 가치의 창조. 그러나 사자라도 아직은 그것을 해내지 못한다. 다만 새로운 창조를 위한 자유의 쟁취, 적어도 사자의 힘은 그것을 해낼 수는 있다. 그러나 말해보라 형제들이여. 사자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어떻게 어린아이는 해낼 수 있는가? 왜 강탈을 일삼는 사자는 이제 어린아이가 되어야만 하는가? 어린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에 의해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최의 운동이자 거룩한 긍정이다. 그렇다,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거룩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원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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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있어 망각이란 '힘에의 의지'를 긍정하는 한가지 계기였다고 할 수 있는데, 기존의 가치를 잊어야만 인간은 자신에게 숨겨진 '힘에의 의지'를 새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니체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어린아이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야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된다' 라고 역설하였던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