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니체의 '낙타'
http://www.segye.com/Articles/NEWS/CULTURE/Article.asp?aid=20120108001898&subctg1=&subctg2=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닌 억센 정신, 짐깨나 지는 정신에게는 참고 견뎌내야 할 무거운 짐이 허다하다. 정신의 강인함, 그것은 무거운 짐을, 그것도 더없이 무거운 짐을 지고자 한다. 무엇이 무겁단 말인가? 짐깨나 지는 정신은 그렇게 묻고는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짐이 가득 실리기를 바란다. 너희 영웅들이여, 내가 그것을 등에 짐으로써 나의 강인함을 확인하고, 그 때문에 기뻐할 수 있는 저 더없이 무거운 것, 그것은 무엇인가? 짐깨나 지는 정신은 묻는다. (중략) 짐깨나 지는 정신은 이처럼 더없이 무거운 짐 모두를 마다하지 않고 짊어진다. 그러고는 마치 짐을 가득 지고 사막을 향해 서둘러 달리는 낙타처럼 그 자신의 사막으로 서둘러 달려간다.”
[‘세 단계의 변화에 대하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짐깨나 지는 정신”, 철학자는 그것이 낙타라고 말한다. 낙타는 ‘아니오!’라고 할 줄 모르는 정신이다. 어떤 불의한 명령 앞에서도 그들은 항의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그들은 언제나 굴종한다. 그들은 노예의 도덕을 내면화한 존재들이다. 그들은 자유를 원하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노예이고 천민들이다.
그들에겐 애초부터 주인이 되려는 의지가 없었다. 주인이 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전부 거는 모험을 해야 하는데, 그들에겐 그런 모험을 할 만한 용기가 없었다. 일견 그들은 착해 보인다. 그들은 항상 “악한 것, 부조리한 것, 추한 것”을 혐오하고 그것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낙타형 인간들은 겨우 존재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결코 울부짖지 않는다. 왜냐하면 견디며 살 만하니까. 그들은 웃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웃을 만큼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삶은 최소주의로만 주어진 것, 이를테면 하나의 무거운 의무, 거역할 수 없는 강령으로 주어진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면제받을 수 없고, 마찬가지로 삶도 면제받을 수가 없다. 그들은 그저 존재함에 만족한다. 이 말은 존재의 보존과 지속성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