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넷-책 2012. 3. 13. 09:51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믿을 수 없지만, 그러면서도 어느 쪽도 어떤 상처도 남기지 않아, 겉으로는 전혀 표가 나지 않고, 서로 속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듯한, 기막히게 완벽한, 그야말로 결백하고 명랑한 불신의 사례들이 인간 생활에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나는 윤리교과서에 나올 법한, 정의라나 뭐라나 하는 도덕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내겐 서로 속이면서도, 결백하고, 명랑하게 살고 있는, 혹은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들 자체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입니다.
-26~27p-

비합법. 내겐 그것이 은근한 즐거움이었습니다. 오히려 마음이 편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합법이라는 것이 오히려 난 두려웠고(거기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강력한 무언가를 예감하게 됩니다) 그 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서, 창문도 없는, 뼛속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그 방에서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해서, 밖은 비합법의 바다라 할지라도 그곳으로 날아들어 헤엄치다가 마침내 죽음에 이르는 게 내겐 훨씬 마음 편할 것 같았습니다.
'음지에 숨어 사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이간 세상에서는 비참한 패배자, 악덕자를 가리키는 말인 것 같은데, 나는 나 자신이 태어난 순간부터 은지에 숨어가는 사람이었다는생각이 들고, 세상 사람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자라고 손가락질 받는 사람과 만나면, 나는 진심으로 정이 갑니다. 나의 그 '정겨운 마음'은 나 자신도 황홀한 기분이 들 정도로 정겨운 마음입니다.
-50~51p-

겁쟁이는 행복조차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목화 솜에도 상처를 입습니다. 행복에 상처 입을 수도 있는 겁니다.
-62p-

세상 사람들의 말투는 이런 식으로 복잡하게 꼬여 가지고 어딘가 뚜렷하지 않고 탁한 구석이 있는데, 언제나 빠져나갈 구멍을 파놓고 있는 듯한, 미묘하고 복잡한 부분이 있어서, 거의 불필요한 경계와 수도 없이 이루어지는 술책과 흥정에 나는 언제나 너무 당황한 나머지 될 대로 되라는 식이 되어, 끝내는 '우스운 행동'으로 위기를 모면하거나 또는 아무 말 없이 상대의 의견을 수긍하여, 모든 걸 네 뜻대로 하라는, 이른바 패배주의자의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78p-

세상이란 도대체 무얼 말하는 걸까요. 인간들의 집단을 말하는 걸까요. 어디에 그 세상이란 것의 실체가 있는 걸까요.
-94p-

신께 묻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과연 순진한 신뢰는 죄의 원천인가요.
순진한 신뢰는 죄입니까?
-119~120p-

불행. 이 세상에는 여러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 불행한 사람들만 존재합니다. 그리 말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하지만 그 사람들의 불행은 세상에 대해 당당히 항의 할 수 있고, 또 '세상'도 그 사람들의 항의를 쉽게 이해하고 동정합니다. 그러나 나의 불행은 모두 나 자신의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항의할 길이 없고, 또 입에 담고 한마디라도 항의조의 말을 꺼내면, 넙치를 비롯한 세상 사람들 전부가, 이제 봤더니 저런 말도 할 줄 아는 놈이었네 하고 놀라자빠질 게 뻔하니, 나는 도대체가 남들이 말하는 '제멋대로'인 인간일까요, 아니면 그와 정반대로 너무 나약한 걸까요. 나 자신도 분간할 수 없지만, 아무튼 난 죄악의 덩어리 같은 놈으로, 끝이 있다면 끝까지 점점 더 불행 속으로 깊이 빠져들기만 해 멈출 도리가 없습니다.
-12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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