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넷-책 2014. 5. 13. 22:45

 


식물들의 사생활

저자
이승우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6-12-0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그들 사이에 내가 있다. 나무가 되고 싶은 형과 창녀가 되고 싶...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타인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사람들이야말로 자기의 비밀이 알려지는 걸 유난히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32

 

나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이 결코 허물이 될 수 없다는 명제에만 편집적으로 집착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은 떳떳하고 자랑스럽고 나아가 바람직한것이다. 사랑의 대상이 누구든. 나는 사랑의 보편성에 매달렸다. 하나의 관념, 또는 추상화된 사랑을 붙잡고 늘어졌다. 그러나 진공상태로 포장되어있는 사랑이란 없다. 사랑은 언제나 그 사랑이 유발되고 고백되고  실연되는 특별한 상황을 가지고 있다. 모든 상황은 상황 안에서의 사랑인 것이다. 모든 사랑이 특별한 것은 그 때문이다.

-62

 

그들은 현실 밖에 있었고 나는 현실 속에 있었다. 현실 밖의 세계는 정결했고, 현실 안의 세계는 추했다. 온전히 이해했다는 뚯이 아니라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는 뜻이다.

-131

 

세상의 크기는 세상을 인식하는 사람의 인식의 크기를 넘지 못하는 법이니까.

-150

 

밤의 숲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숲은 친근했고 밤은 아늑했다. 나는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하늘만 아니라 시간까지도 떠받치고 있는, 태고의 거대한 물푸레나무를 이미 보아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형이 숲속으로 들어가서 보고 싶다고 했던 그 거대한 물푸레나무는 그 숲속 어딘가에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 심어져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숲속 어딘가에 심어져 있는 물푸레나무를 어느 순간 우리가 별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물푸레나무가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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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소나무의 줄기를 안으로 파고들 것처럼 끌어안고 있는, 매끄럽고 가무잡잡한 피부의 여체를 연상시키는 때죽나무를 보았습니다. 집 앞의 왕릉에서였습니다. 그 장면은 식물들의 욕망에 대해 생각하게 했습니다. 구도자처럼 하늘만 우러르며 고요하게 서 있는 나무들의 내면에서 들끓고 있는 욕망. 나무들은 그곳에서 있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곳에 서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서 있는 거라는 하나의 문장이 아찔한 현기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나무들의 내면에 이르지 않고서야 우리가 그들의 사랑과 아픔과 염원을 다 헤아린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

-작가의 말 중

 

나에게 나무는 자신의 생을 인내하는 그런 존재였다. 그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불평 불만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내는 모습은 하나의 경이로움이였다. 

그러나 작가는 나무들의 내면에 들끊고 있는 욕망을 보았고, 그곳에 서 있을 수 밖에 없는 운명에 대해서 보았던 것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가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극 초반의 불구가 된 형과 그 형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창녀를 구해다 주는 동생의 스토리는 꽤 신선했고, 놀라웠는데 초반의 신선함과 궁금증은 결론에 가서는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게다가, 신화적이고 이상적인 사랑과 서로에게 무관심한 가족의 갑작스런 화해는 약간 서로 다른 두개를 합쳐놓은 것 같은 이질감을 느꼈다.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한 느낌이랄까..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리오 시리즈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고 해서 꽤 기대했는데, 아직 내 문학적인 소양이 짧아서인지 단지 취향의 문제인지 아쉬움이 많은 소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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