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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01.15 안녕 주정뱅이 - 권여선
- 2017.01.15 리버스 - 미나토 가나에
- 2017.01.03 고백 - 미나토 가나에
- 2015.12.23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
- 2015.08.12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파트릭 모디아노
글
안녕 주정뱅이 - 권여선
★★★★★
자연이든 관계든 오래 지속되어온것이 파괴되는 데는 번갯불의 찰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들 부부나 케이블카 커플이나 파괴된 논밭에 서 있던 크고 작은 크레인들처럼 가엾고 기괴한 잔여물에
불과하다고 훈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신 또한 하나의 크레인처럼 여윈 어깨를 으쓱했다.
[삼인행] 62p
"나도 애초에, 이렇게 생겨먹지는, 않았겠지. 불가촉천민처럼, 아무에게도, 가닿지 못하게. 내 탓도 아니고, 세상 탓도 아니다. 그래도 내가, 성가시다고 귀찮다고, 누굴 죽이지 않은 게, 어디냐?
그냥 좀, 지진 거야. 손바닥이라, 금세 아물었지. 그게 나를, 살게 한거고."
그녀는 내게 입술에 물을 축여달라는 손짓을 했고 나는 거즈에 보리차를 묻혀 그녀의 입에 대주었다.
"여긴, 책도 없는데, 목이 마르구나."
그녀는 어린 강아지처럼 눈을 감은 채 물을 빨았다.
"그런데 그게 뭘까...... 나를 살게 한...... 그 고약한 게......"
[이모] 106p
삶에서 취소할 수 있는 건 단 하가지도 없다. 지나가는 말이든 무심코 한 행동이든,
일단 튀어나온 이상 돌처럼 단단한 필연이 된다.
[카메라] 136p
"이를테면 과거라는 건 말입니다."
마침내 경련이 잦아들자 그가 말했다.
"무서운 타자이고 이방인입니다. 과거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도 수정이 안되는 끔찍한 오탈자, 씻을 수 없는 얼룩,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제거할 수 없는 요지부동의 이물질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기억이 그렇게 엄청난 융통성을 발휘하도록 진화했는지 모릅니다. 부동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유동적이게 만들 수 있도록, 육중한 과거를 흔들바위처럼 이리저리 기우뚱기우뚱 흔들 수 있도록, 이것과 저것을 뒤섞거나 숨기거나 심지어 무화시킬 수 있도록, 그렇게 우리의 기억은 정확성과는 어긋난 방향으로, 그렇다고 완전한 부정확성은 아닌 방향으로 기괴하게 진화해온 것일 수 있어요."
[역광] 168~169p
그 만남이 행인지 불행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실내화 한켤레] 176p
글
리버스 - 미나토 가나에
★★★☆☆
냉소적인 자신이 동요하는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오리라는 예감이 조금도 없었나?
불행한 일상 속이 아니라, 행복이 찾아왔을 때 그날을 맞이할까봐 불안에 떤 적이 한 번도 없었나?
글
고백 - 미나토 가나에
★★★★☆
역시 아무리 잔인한 범죄자라도 제재는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결코 범죄자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재는 평범한 세상 사람들의 착각과 폭주를 막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에게 칭찬받고 싶다는 소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착한 일이나 훌륭한 행동을 하기란 힘듭니다.
그렇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무엇일까.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질책하면 됩니다.
아무리 그래도 가장 먼저 규탄하는 사람, 규탄의 선두에 서는 사람에겐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아무도 찬동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규탄하는 누군가를 따르기란 무척 쉽습니다.
자기 이념은 필요 없고, '나도, 나도'하고 말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게다가 착한 일을 하면서 일상의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니 최소의 쾌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한 번 그 쾌감을 맛보면 하나의 제재가 끝나도 새로운 쾌감을 얻고 싶어
다음번에 규탄할 상대를 찾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잔학한 악인을 규탄했지만, 점차 규탄받아야 할 사람을 억지로 만들어내려 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이미 중세 유럽의 마녀 재판이나 다름없습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벌할 권리가 없다는 사실을……
(77p~78p)
살의란 일정한 거리가 필요한 인간이 그 경계선을 넘어왔을 때 생기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227p)
글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 파트릭 모디아노
"아시다시피, 우리는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려고 하지요...."
그렇고 말고, 나도 이해했다. 이따금 이정표도 없는 넓고 막막한 대지처럼 보이는 이 삶 속에서, 모든 도피선과 잃어버린 지평들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더이상 무턱대고 항해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기 위해 지표들을 찾고, 일종의 토지대장 같은 것을 작성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계의 실을 잣고, 불확실한 만남들을 좀더 안정적으로 만들고자 한다.
-52
대체 무슨 권리로 우리가 타인의 삶에 불법침입을 하며, 또 얼마나 오만불손하게 그들의 깊은 속마음을 뒤진단 말인가....
무슨 자격으로?
-68
나는 그곳을 나에게 가르쳐줄 표지를 기다렸다. 저 아래, 거리는 마치 절벽 가장자리까지 이어진 듯 허공에 닿아 있었다. 나는 간혹 꿈에서 우리를 사로잡는 그런 가벼움을 느끼며 앞으로 걸어갔다. 더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 모든 위험은 하찮은 것들이니까. 만약 일이 정말 잘못된다 해도, 깨어나기만 하면 돼. 당신은 무적이야. 나는 저쪽, 하늘의 푸르름과 허공만이 있는 그 끝까지 도달하고 싶어 안달하며 걸었다. 그 어떤 단어가 내 정신 상태를 표현하랴? 나는 극히 빈약한 어휘만을 사용할 뿐이다. 도취? 엑시터시? 황홀? 어쨋든 그 길은 나에게 친숙했다. 옛날에도 그 길을 따라 걸은 것만 같았다. 곧 절벽의 끝에 도달할 것이고 그러면 나는 허공에 뛰어들게 되리라. 공중을 떠다니다가 마침내 내가 항상 추구하던 무중력 상태의 느낌을 알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행복인가. 나는 지금도 그날 아침, 그 거리 그리고 그끝의 하늘을 너무도 또렷이 기억한다.
-103~104
그녀는 자유로운 공기를 호흡하기 위해 도망하고, 항상 더 멀리 도피하며, 난폭한 방식으로 일상적인 삶과의 관계를 깨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자신이 뒤에 놓아둔 단역들이 자신을 다시 찾아내 책임을 지라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공황 상태의 두려움을 보였다. 언젠가 그 협박의 대가들을 피해 그들의 손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몸을 숨겨야 했다. 저 높은 곳, 정상의 대기 속에 혹은 먼바다의 대기나.
-128
"됐어. 이제 마음대로 가렴."
-161